티스토리 뷰
※쿠로오x야치 입니다.
※둘은 막 사귀기 시작했다는 설정입니다.
"어서오세요. 찾으시는 물건 있으세요?"
"향수요. 여자친구 선물하려고요."
"아! 이쪽으로 오세요."
야치 가까이에만 가면 매번 머릿속을 뒤흔드는듯한 향기가 났다. 첫 만남이 겨울이였다면 이러지 않았을까? 옷을 꽁꽁 싸매입고 공기도 차가워서 냄새를 맡기는 커녕 코끝이 빨개져서 아무것에도 신경을 못 썼겠지... 그렇지만 첫 만남은 가만히 있어도 티셔츠의 카라에 땀이 배이는 여름이였다. 합숙 첫날, 미야기에서 출발하느라 늦게 도착한 카라스노 팀의 안내는 본교의 주장인 자신이 맡았다. 매니져들은 따로 일정을 가졌기에 바로 만난건 아니였지만 저녁시간에 만났으니 첫날에 만났다는 것은 다름없었다. 오후 연습이 끝나고 저녁 식사를 하러 식당으로 향하던 길이였다. 무언가 부탁 받은게 있는지 종이 쪽지를 들고 부산하게 두리번 거리며 식당 주변을 배회하고 있었다.
'꼭 병아리 같네'
"뭐 찾아?"
병아리는 낯선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더니 바르르 숨을 가다듬으며 대답했다.
"그..그... 후문이요..!!"
"후문은 저쪽 방향으로 가면 되."
"아 가..감사합니다!!"
어딘지 잘 모르겠으면 같이 가줄까? 라고 말하려 했는데 작은 매니져는 그럴 틈도 없이 옆을 지나쳐 뛰어가 버렸다. 쿠로오의 눈이 갑자기 번뜩 뜨였다.
"'응?"
잠깐이였지만 작은 매니져가 뛰어가며 스쳐간 자리에 희미하게 달달한 향이 났다. 미풍이 불듯 약하지만 어루만지듯 지나가며 사라졌다. 식당이 코앞이긴 했지만 음식 냄새라기엔 단내가 더 났고 꽃향기라기엔 이 한여름에 주변에 꽃이 피어있을만한 곳이 없었다.
쿠로오는 야릇한 기분을 느끼며 옆구리를 쓰다듬어 내리고 작은 매니져가 사라진 방향을 의미없이 응시했다.
.... 배가 고픈 나머지 코가 착각을 한건가? 이만 생각하고 쿠로오는 뒤돌아 식당으로 향했다.
사실 어렴풋이 그 향기의 발원지는 짐작했다. 다만 짐작일 뿐이였고 꼬맹이 매니져에게 다가가는 건 생각보다 어려웠다. 주장은 다른 팀원들보다 책임지고 있는 일이 많아 바빴고 매니져들은 아예 일정, 숙소 건물, 루트 자체가 달라 얼굴 볼 시간도 내기 어려웠다. 한번만이라도 좋으니까 가까이에서 냄새를 맡으면 확신할 수 있는데 말이다.
몇일째였을까. 그렇게 눈독을 들이던 중, 수박이 간식으로 들어온 날 오후, 쉬는 시간이 끝날 쯤 매니져들이 다 먹은 수박 껍데기를 수거하고 있었다. 집합하라는 소리에 카라스노와의 잡답을 끝내고 체육관으로 가려는 도중 지나가는 선수들 사이에서 흰 봉투를 들고 돌아다니는 야치가 보였다. 마침 사와무라와 아즈마네는 먼저 쓰레기를 버리고 집합장소로 가고 있었다. 얼른 눈을 돌려 매니져들쪽을 확인했다. 은근히 신경쓰였던 3학년 매니져도 수박 껍데기들의 뒤처리에 정신이 없는 차였다.
이때다.
쿠로오는 슬쩍 발을 늦춰 무리의 뒷쪽으로 빠졌다.
"쓰... 쓰레기는 여기에...."
쿠로오의 손에 들린 수박 껍데기를 보고 야치가 쭈뼛쭈뼛 다가왔다. 쿠로오는 한쪽 입꼬리를 씨익 올리며 다가와 늑대처럼 잡아먹는 시늉을 하며 손을 올려 봉지 위에 껍데기를 버렸다. 야치가 힉 하고 놀라 자리에 얼어버리자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고개를 숙여 야치의 귓가에 다가와 들리지않게 숨을 들이켰다. 그리곤 야치가 깜짝놀라 어깨를 들썩이기도 전에 얼른 아무것도 아니라는 표정으로 돌아와 말했다.
"수고가 많네. 고마워."
"아...!?!아니예요 가...감사합니다..."
쿠로오는 장난스런 웃음을 띤 채 뒤돌아 집합장소로 향했다.
'아...! 역시 잘못 맡은게 아니야.'
가까이서 맡으니 꿀 섞인 복숭아꽃 향기가 났다. 달콤하기로 꼽는다면 이보다 더 달콤할 수 없었다. 아주 잠깐이였지만 향기가 펫속으로 스미는 느낌이 아찔했고 머리는 취할만큼 어지러웠다. 온몸에 전율이 흐르는 것을 가다듬고 쿠로오는 뱃속 깊이 입맛을 다셨다.
-----------------------------------------------------------------------------------------
"얏쨩. "
"네?! 아..아 그런거 안주셔도 괜찮은..."
"짠!"
"아아!?"
"얏쨩한테 어울릴것 같아서 샀어. 비싼것도 아니니까 부담가지지마."
"그... 그렇지만..."
"얏쨩이 잘 써주면 난 그걸로 좋아"
"으응.."
"응?"
"아니, 아녜요! 고맙습니다하.... 잘 쓸게요..!! ...그.... 전에도 말씀 드렸지만... 저 남자친구 처음 사겨봐서..... 이거 남자친구한테 받는 첫 선물이예요... "
쿠로오는 작은 선물박스를 소중하게 받아들고 무언가를 계속 재잘거리는 야치를 내려다보았다. 박스를 만지작거리는 작은 손, 병아리마냥 삐약이는 입, 정수리 옆으로 한 줌만 묶은 금발과 그 아랫쪽은 하얀 피부의....
'씹고 싶다...'
무의식적으로 든 생각에 놀라 퍼뜩 정신이 돌아왔다.
"쿠로오씨?"
"응?"
"저기 별것 아니지만 제가 보답으로 아이스크림 살게요. 여기서 5분 정도 걸어가면 제가 좋아하는 아이스크림 집 있어요. 가끔 가는 곳인데 분위기도 좋고 예뻐요! 같이 가요!"
"그래."
자신은 분명 저 여린 소녀에게 꽤나 위험한 존재이다. 쿠로오는 스스로 그것을 이미 잘 알고 있기에 이빨을 드러내지 않으려 조심했다.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 순진무구한 소녀는 자신의 곁을 그대로 내주었다. 기대에 반하지 않게 쿠로오는 누가 보기에도 자상한 남자친구로서 그 옆을 지킬 것이라 다짐했다.
소녀가 달아나지 않도록.... 언젠가 자신이 상냥한 미소가 칠해진 가면을 벗고 소녀의 목덜미를 탐하는 순간을 거머쥘 때 까지...